[인간에게 인간다움이란] 3편: 인간의 수면, AI가 닿을 수 없는 내면의 암실

2025. 6. 1. 20:26·Essay

 

AI와 인간 모두 주기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유사성이 보인다.
AI는 Garbage Collection(GC) 을 통해 불필요한 데이터를 제거함으로써 시스템의 효율을 유지한다.
인간 역시 하루 동안 축적된 피로, 감정, 기억을 정리하기 위해 잠에 든다.

​
그러나 이 두 ‘정비’의 방식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AI의 GC는 오로지 효율만을 기준으로 작동한다.
남길 것과 제거할 것을 조건과 우선순위로 냉정하게 분류하며, 그 과정에는 감정도, 망설임도, 맥락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하지 않다면 어떤 데이터라도 삭제되며, 자원이 풍족할 경우엔 GC조차 불필요한 연산으로 판단되어 생략되기도 한다.
이 모든 판단의 목적은 단 하나, 성능의 최적화다.

​
반면, 인간의 수면은 기능적인 정비가 아니다.
잠든다는 것은 단순한 시스템 일시 정지가 아니라, '의식' 아래에서 나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나를 마주하는 '의식'이다.

​
수면 중 인간의 뇌는 설명되지 않은 감정, 해결되지 않은 기억, 잊은 줄 알았던 상처들을 끌어올려 꿈이라는 형식으로 재구성한다.
그 꿈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인물을 다시 만나고, 실패한 장면을 다시 살며, 이루지 못한 소망을 다시 꺼내든다. 심지어 삶과 무관한, 의미조차 찾기 어려운 환상들이 뒤섞이기도 한다.
나만해도 “도대체 이게 무슨 꿈이지…” 하는 말로 아침을 맞는 날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의미 없어 보이는’ 꿈조차, 우리 정신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감정의 무게가 꿈을 통해 정리되고, 우리는 아침에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꿈이 언제나 회복만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 꿈은, 잊고 싶었던 고통을 다시 불러온다.
이미 끝났다고 믿었던 사건이 반복되고, 몸은 자고 있지만 마음은 그때 그 순간으로 회귀해 고통을 되새긴다.
수면이 회복의 공간인 동시에 기억의 감옥이 되는 순간이다.

​시간이 흐르고 겨우 아문 상처가, 꿈속에서 다시 벌어져버리는 경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의식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트라우마가 밤마다 문을 두드리는 경험. 그것은 GC처럼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만이 감당해야 하는 고유한 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반복은 인간다움을 유지하는데에 의미가 있다. AI는 지난 고통을 반복하거나 회복할 필요가 없지만, 인간은 그 반복 속에서 자신을 다시 구성하고, 삶의 균형을 다시 잡는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수면을 ‘내면의 암실’이라 부르고 싶다.
빛이 꺼지고 외부의 입력이 차단된 고요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가장 솔직하고 날것의 형태로 나 자신을 만들어낸다.

회복되지 않은 마음, 치유되지 않은 기억,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그 공간에서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암실은 인간만이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다. 현재의 AI에게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이 얽힌 존재의 현상소다.​

그리고 그 암실 속에서 우리는 매일, 다시 자신을 만들어간다. 
때로는 다시 무너지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살아내는 의지를 되찾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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